싸리나무 이야기
4월 흑싸리, 7월 붉은싸리 이야기
오늘은 봄이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싸리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릴 적, 봄이면 학교 가는 길목엔 하얀 꽃이 기다란 가지에 방울방울 맺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예뻐서 가지를 꺾어 꽃병에 꽂아 놓기도 했었습니다
그 꽃나무를 우리는 ‘싸리나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나무를 ‘조팝나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길가에 늘어지게 핀 하얀 꽃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저게 싸리나무야. 싸리 빗자루 만들던 그 나무.”라고 말했습니다.
지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싸리나무가 아니야.”라고..
순간, 머릿속이 살짝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나름 시골에서 자라 나무에 대해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다행히도 나무에 대해 잘 아시는 아버지가 계시니, 다음에 꼭 여쭤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며칠 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길.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그 나무를 가리키며 여쭈었습니다.
“아버지, 저거 싸리나무 맞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맞아”라고 하셨습니다.
속으로 ‘역시 내가 맞았네.’ 뿌듯해하며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럼 저걸로 싸리빗자루도 만들죠?”
그러자 아버지는 “저걸로는 못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는지를 여쭈니 나무가 너무 낭창낭창해서 빗자루로는 쓸 수가 없다고, 싸리비는 좀 더 단단한 걸로 만들어야 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아버지는 여름, 7월쯤 빨간 꽃이 피는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로 싸리 빗자루를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여름이면 빨간 아니 분홍색 꽃이 피던 나무가 있었던 것을...
그래서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싸리나무라고 부르는 이 나무는 뭐예요?”
아버지는 그건 4월 흑싸리라고 하고 7월에 꽃이 피는 싸리는 붉은 싸리라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흑싸리’, '붉은 싸리'라는 말, 어딘가 귀에 익었습니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화투! 고스톱 칠 때 나오는 그 패 중에 바로 ‘4월 흑싸리’, '7월 빨강 사리'가 있었던 거죠.
순간 너무 신기해서 놀랬습니다.
화투 그림이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실제 자연 속 꽃과 나무를 본떠 계절의 흐름을 담아 만든 거라는 사실에...
예전엔 그저 무늬쯤으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안엔 우리 조상님들의 삶의 풍경과 정서가 녹아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던 나무,
그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싸리나무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앞으로는 싸리나무를 볼 때마다 함께 고스톱을 치시며 즐거워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