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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 시위, 집회

가치삶 (가치있는 삶) 2025. 6. 15. 13:06

내집마련의 꿈을 위한 외침

이른 새벽 붉게 떠오른 태양만큼이나 붉게 타버린 내마음.

 

모임 시간은 새벽 430. 그래서일까, 혹시 못 일어날까 하는 걱정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자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끝내 잠들지 못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40. 이쯤 되면 자는 건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 잠들면 절대 못 일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기다리며 새벽을 기다리는 이유에 대해서 써보려 한다.

 

예전에 지주택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지역주택조합이란 같은 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한 조합이다. 일반 분양 아파트보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조합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싼 가격에 집을 살 수 있다고?’ 하는 마음에 혹해서 가입하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당시에는 곧 착공된다는 말에 마음이 설렜고 바로 다음 해에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에 가입했다. 그러나 공사는 미뤄지고 또 미뤄졌다. 그러다 2022년에 드디어 착공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그런데 착공하기 전에 자재 가격이 폭등했다며 추가분담금 2,200만 원을 내라는 통보가 왔었다. 매스컴에서도 자재값이 폭등했다고 난리였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납부했다.
이제 진짜 내집이 생기는구나하는 마음으로 시간 날 때마다 현장을 찾아가 아파트가 점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곤 했다.

 

그런데 입주를 두 달 앞두고 다시 들려온 소식은 날벼락 같았다.
추가분담금이 무려 4,620만 원. 이번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조합원들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서울 본사로 항의시위를 가기로 하고 만나기로 한 시간이 바로 새벽 430분이었다.
그 시위에 꼭 참여하기 위해 나는 밤을 새우기로 마음먹었다.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 문제만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참여를 결심했다.

 

힘들게 기다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사정상 못 온 이들은 더 속이 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움직여보는 건 젊었을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덕분에 하늘에 예쁘게 떠 있는 밝은 해도 오랜만에 구경할 수 있었다.
시위를 하러 가는 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부담감도 잊을 수 있었다.

잠시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내린 서울 본사 건물 앞에 서자 갑갑함이 밀려왔다.
서민들의 돈으로 이런 웅장한 건물을 지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 지주택 건설사는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전국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문제로 주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매스컴에서도 종종 보도되던 그 회사였다.

그래서 이번 시위도 대구에 있는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시공사 아파트 조합원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을 때는 경찰차 세 대가 와 있었고, 본사 앞에는 바리케이드 설치되어 있었다. 그 주위를 경찰복과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당장 따지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뿐이었다.

우리는 시위를 이끄는 분의 구호에 맞춰 큰소리로 외치며 항의했다.
잠시 소리를 지른 것뿐인데도 목이 아팠다.

 

조금 뒤 대구에서 오신 분들도 도착했다.
함께 열심히 외쳤다.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하지만 건물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누구 하나 내려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만 우리를 쳐다봤다.

TV 방송국과 유튜브 채널에서 촬영하는 모습도 보였다. 유튜브에서도 우리의 시위 현장이 방송되고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현실을 알고, 우리 같은 피해자가 더는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듣자 하니, 대구 쪽은 우리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추가 분담금이 1차분 포함하면 4억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아파트 조합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상황도 억울하지만,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니 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분들은 더 간절하게 느껴졌다.

시위가 거의 끝나갈 무렵, 대구 조합원 중 한 분이 108배를 올리시다 쓰러지셨다. 119가 출동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 비록 짧은 시위였지만, 우리의 간절한 외침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빨리 해결되길 바랄 뿐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얻게 된 내 집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힘없는 사람들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시공사의 횡포, 우리의 작지만 간절한 외침이 큰 울림으로 다가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법은 법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법을 잘 모르는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것이면 좋겠다.

법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힘없는 사람들.
목소리라도 크게 외쳐 억울함을 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