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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비오는 날, 논에서 우렁이랑

by 가치삶 (가치있는 삶) 2025. 5. 11.

비 오는 날, 제초제 작업과 가족의 하루

일하는 동생들과,우렁 그리고 그 흔적들

 

모를 심고 나면 2주 안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논에 제초제를 뿌리는 작업. 해마다 반복되는 이 일은 이제 자연스럽게 동생과 내 몫이 되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날짜를 정해두었지만,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어 걱정이 앞섰다. 그렇다고 미룰 수는 없었다. 이번 주 안에는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날 밤, 큰비는 아니라는 예보에 따라 아침 상황을 보고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살폈다. 역시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동생도 나처럼 고민 중이었는지 연락이 없었다. 먼저 전화를 걸어 이야기한 끝에, 점심 이후 잠시 비가 그친다는 예보를 믿고 서둘러 준비해 시골로 향했다.

 

이번엔 함께할 사람이 네 명으로 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하지만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장화는 짝이 맞지 않고, 장갑도, 장화를 묶을 끈도 모두 찾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짝이 맞지 않는 장화를 신고 하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엄마가 잘 보관하셨다가 먼저 나가셔서 챙겨 주셨을 텐데... 비로소 세심했던 엄마의 손길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 것 같다.

 

논에 도착해 먼저 동생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나도 논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많다 보니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예전엔 푹푹 빠지는 진흙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번엔 의외로 수월했다.

아버지께서 물을 빨리 차게 하려고 논바닥이 딱딱할 때 로터리 작업을 하도록 하셨다는데, 그 때문에 깊이 갈아지지 않아서 발이 덜 빠졌다고 한다. 모가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약을 뿌리던 중 논 속에는 우렁이들이 많이 있었다. 매년 약을 뿌려도 살아남는 이 녀석들. 어쩌면 이 우렁이 덕분에 농약을 덜 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이 끝날 무렵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둘러 마무리했다.

 

우렁이를 사진으로 담고 싶어 논 가장자리를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마치 숨바꼭질하듯 숨어버린 듯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고 바쁜 와중에도 몇 컷을 남겼다.

 

이런 날엔 늘 아버지가 함께하셨다. “우리가 할게요해도 꼭 함께 나서서 꼼꼼히 살피시던 분이셨다. 그런데 올해는 함께하지 않으셨다. 요즘 부쩍 불편하신 다리 때문일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빈자리가 괜히 마음을 아리게 했다.

 

여긴 덜 뿌렸고, 저긴 너무 뿌렸다하실까 봐 더 신경 써서 작업했던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 각자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나는 미뤄뒀던 화장실 청소를, 동생은 도어락을 손보고, 또 누군가는 먹을거리를 챙겼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는 비를 맞으며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우리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드는 그 모습은 늘 보던 모습인데도 볼 때마다 마음이 찡하다. 안쓰럽고 짠하다. 어쩌면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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