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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힐링 여행

이팝나무, 철길과 팔복예술공장

by 가치삶 (가치있는 삶) 2025. 5. 8.

현재와 과거, 피고 지는 아름다움 속을 걷다

 

팔복예술공장과 이팝나무 철길을 다녀왔다.
철길 옆으로 이팝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을 기대하며 길을 나섰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이팝꽃은 이미 절정을 지난 상태였다.
어떤 나무는 꽃이 져 갈색으로 물들고 있었고, 또 어떤 나무는 새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만개한 풍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피고 지는 모습이 어우러진 지금 이 모습도 참 아름다웠다

 

길 양옆, 철길을 따라 수백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이팝나무들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철길이 항상 개방되어있는 줄 알고 철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당황한 채로 지나가던 열차에서 내리는 분께 여쭈었지만 손짓뿐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조금 더 걸어갔는데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가라는 신호 같아 급히 철길을 벗어나 인도로 이동했다.

 

걷는 도중 검색해 보니, 이 철길은 개방된 날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오늘은 개방일이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유난히 조용하고 여유로웠던 것 같다.

인도를 따라 걷다 보니 한쪽은 오래된 폐공장들이 군데군데 늘어서 있었고 다른 한쪽은 펜스가 쳐져 있는 철길로 양 옆은 길게 이팝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멀리까지 이어진 이팝나무의 풍경은 멀리서 보기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철길 너머로는 긴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어떤 구간은 분수처럼 단장되어 있었다.

철길을 기준으로 한쪽은 멈춰 선 과거처럼 보이는 폐공장이, 다른 한쪽은 여전히 가동 중인 현재의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서로 대조적이었지만 중간에 놓인 철길이 두 세계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걷다가 '팔복예술공장'이라는 간판을 보았다.

팔복 예술 공장은 과거 카세트 테이프 공장이었는데 1991년 폐업 후 25년간 방치 되었다가 공장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며 새로운 문화 예술공간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팝나무에만 마음이 쏠려 예술공장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그 간판을 보는 순간,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름부터가 과거와 현재, 공장과 예술이 공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한문과 한글, 그림이 섞인 벽화였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으니 작품이겠지 하며 자세히 보니 쏘렉스란 단어가 보였다. 공장 이름이었다. 이 공장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였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천에 그려진 추상화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지저분한 천에 귀찮아 대충 물감을 입혀 놓은 것 같았다. “이게 작품이라고?” 의아해 했다. 2층에 마련된 어린이 체험 공간에서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었다. 알고 나니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상상과 감성이 담긴 진짜 예술이었던 것이다.

 

공장의 허물어진 벽, 벽을 타고 자라는 담쟁이 넝쿨, 하늘을 가린 낡은 천막, 이 모든 것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설치미술처럼 보였다. ‘예술공장’이라는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다 보니 낡아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음침해 보이기까지 하는 건물이 보였다. 그런데 외부 바닥은 대조적으로 푸른 물과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뭘까?’ 하는 궁금함과 동시에 우산을 든 아이들이 몰려와 우비와 우산을 펴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즐겁게 뛰놀고 있었다. 음침해 보이던 그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였다.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음침한 콘크리트를 아이들의 밝은 웃음으로 채워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 준것 같았다.


 그 옛날 공장 굴뚝, 담 위에 놓인 새집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아이들모든 것이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려 있었다.

 

그땐 그랬지라는 향수와 지금은 이렇구나라는 현재가 겹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한다면, 조금 덜 상처받고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팝꽃과 철길만을 생각하며 나섯는데 생각지도 않은 큰 선물을 받은듯한 기분이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꿈꾸는 예술터를 놀이터 삼아 잠깐 놀다 가도 좋을 장소인것 같다.

 청개구리또또와 꾸러기들이라는 낭독 공연도 열린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공간이든 미리 알고 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게 뭐지?’보다 , 이래서 그렇구나하고 느끼는 감동은 훨씬 더 깊고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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