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전주수목원에서의 하루는 활짝 만개한 장미꽃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꽃봉오리만 맺혀 있던 때에 방문했었기에 아쉬움이 컸지만, 이번에는 꽃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없어 미루고 있던 일정이었는데 친구의 갑작스러운 전화로 다시 찾게 되었다. 요즘 바쁘게 지내다 보니 몸이 피곤했지만, 마음은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지난번과는 다른 길로 들어섰는데 장미의 뜨락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장미의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건 활짝 핀 장미들로 가득한 장미정원이었다.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흰색 등 다양한 색감의 장미들이 한껏 피어 있었고 마치 꽃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었다.
정원을 가꾸는 분들의 손길이 하나하나 느껴졌고 그 정성과 수고에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수목원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으며, 장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기 포토존마다 줄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던 나였지만, 그날은 나도 모르게 포즈를 취하며 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있었다. 아마 장미가 주는 그 고운 분위기에 마음이 열렸던 것 같다.
다양한 종류의 장미가 풍기는 향과 분위기가 달라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한참을 걷다가 지난번에는 보았지만 소개할 것이 많아 미처 소개해 드리지 못했던 나무뿌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땅 위로 솟아오른 뿌리들은 마치 조각품처럼 기묘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낙우송과 공기뿌리’라고 적혀 있었다. 나무가 땅속 공기가 부족한 곳에서 뿌리를 바깥으로 내보내어 숨을 쉰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그 기이한 생김새에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이 뿌리는 호수를 배경으로 한 정자 근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자연은 늘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산책길 중간중간에는 따뜻한 말들이 적힌 예쁜 팻말들도 많았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당신은 존재만으로 아름답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같은 문구들은 지친 마음을 토닥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발걸음을 멈추고 글귀를 하나하나 읽으며 마음속으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문구였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모든 문장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이른 봄부터 꽃을 피웠던 식물들은 이미 열매를 맺고 있었다. 초록빛 사이사이로 작은 열매들이 맺혀 있었고, 그중에서도 개암나무가 특히 눈에 띄었다. 어릴 적 ‘깨금나무’라 부르며 열매를 따서 껍질을 깨고 고소한 맛을 즐기던 기억이 떠올랐다. 단단한 껍질을 벗기고 나면 나오는 고소한 열매의 맛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개암나무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헤이즐넛’이라는 걸 알고는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흔히 마시는 헤이즐넛 커피에 들어간다는 그 열매가 내 어린 시절의 추억 속 열매였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수목원을 한 바퀴 돌며 예쁜 꽃들과 마주하고 친구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피로는 잊혔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분주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느낄 수 있었고, 자연과 친구,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번 전주수목원 나들이는 단순한 산책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저 예쁜 꽃을 보기 위한 방문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따뜻한 말들, 그리고 함께 걸어준 친구 덕분에 몸과 마음이 모두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자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