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식물

싸리나무 이야기

by 가치삶 (가치있는 삶) 2025. 4. 12.

4월 흑싸리, 7월 붉은싸리 이야기

꽃은 하얗고 예쁜데 이름은 '흑싸리', 싸리빗자루 만드는 '붉은싸리'(붉은싸리 출처: Treeinfo)


오늘은 봄이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싸리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릴 적, 봄이면 학교 가는 길목엔 하얀 꽃이 기다란 가지에 방울방울 맺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예뻐서 가지를 꺾어 꽃병에 꽂아 놓기도 했었습니다  

그 꽃나무를 우리는 ‘싸리나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나무를 ‘조팝나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길가에 늘어지게 핀 하얀 꽃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저게 싸리나무야. 싸리 빗자루 만들던 그 나무.”라고 말했습니다.
지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싸리나무가 아니야.”라고..

순간, 머릿속이 살짝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나름 시골에서 자라 나무에 대해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다행히도 나무에 대해 잘 아시는 아버지가 계시니, 다음에 꼭 여쭤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며칠 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길.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그 나무를 가리키며 여쭈었습니다.
“아버지, 저거 싸리나무 맞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맞아”라고 하셨습니다.
속으로 ‘역시 내가 맞았네.’ 뿌듯해하며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럼 저걸로 싸리빗자루도 만들죠?”

그러자 아버지는 “저걸로는 못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는지를 여쭈니 나무가 너무 낭창낭창해서 빗자루로는 쓸 수가 없다고, 싸리비는 좀 더 단단한 걸로 만들어야 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아버지는 여름, 7월쯤 빨간 꽃이 피는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로 싸리 빗자루를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여름이면 빨간 아니 분홍색 꽃이 피던 나무가 있었던 것을...

그래서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싸리나무라고 부르는 이 나무는 뭐예요?”
아버지는 그건 4월 흑싸리라고 하고  7월에 꽃이 피는 싸리는 붉은 싸리라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흑싸리’, '붉은 싸리'라는 말, 어딘가 귀에 익었습니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화투! 고스톱 칠 때 나오는 그 패 중에 바로 ‘4월 흑싸리’, '7월 빨강 사리'가 있었던 거죠.

순간 너무 신기해서 놀랬습니다.
화투 그림이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실제 자연 속 꽃과 나무를 본떠 계절의 흐름을 담아 만든 거라는 사실에...
예전엔 그저 무늬쯤으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안엔 우리 조상님들의 삶의 풍경과 정서가 녹아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던 나무,
그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싸리나무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앞으로는 싸리나무를 볼 때마다 함께 고스톱을 치시며 즐거워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