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주 이야기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쓰고 향도 고약하고, 맛도 없어서 목이 열리지 않는다. 삼킬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끔 술이 달다고들 한다. 기분에 따라서 술이 달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쓰기도 한다고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에게 있어서 술은 그냥, 맛없는 술일 뿐인데 말이다. 기분이 좋아서 마셔도 나에게는 그냥 쓴 술이었다.
오늘은 문득 2021년도에 담가둔 매실주가 생각나서 개봉해 보았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나지만, 뚜껑을 여는 순간 향긋하니 냄새는 좋았다. 맛을 한 번 볼까, 하다가 그 쓴맛을 삼킬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넘기고, 이 매실주는 술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작은 병에 소분해서 담아봤다.
담고 보니 그 색이 참 예뻤다. 노랗지도 않고, 갈색도 아닌 아주 투명하면서도 맑은 갈색이었다. 색이 참 예쁘다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처음엔 그냥 무색의 술이었는데, 세월을 품고 이렇게 고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한때는 싫어했던 술이, 오늘은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다니… 나에게도 세월은 비켜가지 못했나 보다.
작년 어느 날 저녁,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술을 마시고 싶은데, 사러 가기 귀찮아하며 서로 미루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몇해 전에 담궈 놓은 매실주가 생각났다. 작은 주전자에 가득 떠서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너무 맛있다며 맛있게 먹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땐 밤이라 이 예쁜 색을 보지 못했었다. 이번에 다시 꺼내보니 그때 느끼지 못한 감동까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작년에도 맛있다고 했는데, 올해는 더 익어 훨씬 깊은 맛이 나겠지!
사랑하는 아이들이 마실 거니까, "더 더 맛있어져라." 하며 긍정의 기운을 넣어 다시 밀봉했다.
이 예쁜 색을 기록하고 싶어서, 매실주가 돋보일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술이 이렇게 예뻐 보이다니…
아이들이 집에 와서 이 술 한잔에 웃음꽃과 이야기꽃이 피어날 걸 생각하니 괜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문득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누가 있더라.' 하고 생각해 봤다. 친구가 마시는 것만 봐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친구가 없었다.
결국 이 술은 우리 아이들 몫이 되겠지.
그것도 참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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